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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번역되감기 ○ 오윤주

최종 수정일: 2024년 11월 11일



 


나는 내 몸의 껍질을 들춰 본다. 뼈와 근육이 벌어지고 붉은 고기로부터 분리된 피부의 표면은 살색이다. 살은 어떤 빛 아래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색을 발한다. 희끄무레한. 노란. 검은. 핏빛의. 여성 모양을 한 화석. 나는 굳어진 살갗을 고인돌처럼 쓰다듬는다. 그 위에 덮인 한 겹의 옷 ― 합성 염료 염색 공정을 거친 인조섬유 아래로. 이곳은 나의 이중 무덤. 이중 디스포리아dysphoria. 나는 이중의 틈 사이로 나를 밀어 넣고 찢겨 나가는 안과 밖을 견딘다. 언제나 너무 크거나 좁은 공간 속에서 다른 몸 다른 옷을 상상하며. 나에게 가장 불가해한 사실들 중 하나: 나는 한국인이고 그건 내가 나라는 사실과 같은 말이다. 가장 가깝고 먼 이곳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 내가 먹고 자란 이 몸을 무슨 이름으로 부를지 고민하는 동안 여러 밤과 낮이 빠르게 지난다. 여기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여기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내가 한국인 적 없다면? 나는 언제나 한국 바깥으로 추방되어 왔다면? 나는 집 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가장 먼 곳으로 유배된다. 이중의 추방. 이중의 디아스포라diaspora. 하나이면서 동시에 양쪽으로 무한히 분기하는 반 접힌 포트만투portmanteau●1)의 시간. 나는 집 안에서 집 안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강구한다. 벌어지는 접경 지대에서 상상된 상실을 공유하는 것들을 불러들이며. 나는 나의 망명자이자 나의 유목민이니 나의 고아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출구는 점점 더 많아진다. 나의 다공성 몸은 다산하고 좀처럼 맞는 옷을 찾지 못한다. 안팎을 분간하기 어려운 너덜거리는 피부의 주름마다 제때 번역되지 못해 버려진 소리들이 해초의 둑처럼 넘실거리고 나는 나의 무수한 구멍을 통해 빠져나갔다 되돌아오는 침묵의 춤을 본다. 종과 횡으로 갈라지는 시공의 극점 이것은 이중-번역-되감기의 노래 번역은 반역反逆이고 나는 반역反譯을 시도한다


한국인은 한반도에 사는 한의 민족 한민족이라 한다 나는 한이라는 말을 입기가 어렵다 내 몸을 압박하는 까슬거리는 원단 온몸의 털이 바늘처럼 곧추선다 나에게 한은 사어死語이고 한 대신 트라우마 신경증 우울증이란 말들이 몸에 익숙하게 맞는다 나의 몸은 이미 근대화되었고 현대의 처방에 따라 현대의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한의 감각은 나의 근육과 뼈와 혈관의 골마다 잠들어 돌 같은 심장이 몸속을 떠돌며 어딘가에 부딪힐 때마다 거치적거리는 서양식 의복에 흠집을 낸다 나는 찢어진 허물을 버리고 새로운 옷을 찾는다 언제나 미끄러지는 언어의 틈에 몸을 욱여넣으며 그러나 한이라는 말에 드는 깊은 거부감은 어디서 연원하는 걸까? 나의 한 엄마의 한 할머니의 한 할머니의 할머니의 한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말로도 번역할 수 없는 내 안의 텅 빈 허공에 잘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돌아간다 거슬러 셀 수 없는 물줄기의 깨어진 지류마다 나로부터 추방된 나가 나를 부르는 곳으로   더 멀리  더 가까이

전으로


 


단군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건국한 인물로 한국의 신화적·역사적 기원의 자리에 위치한다. 단군은 수염을 길게 기르고 위엄 있는 복장을 한 나이 든 남성의 이미지로 표상되며 10월 3일 개천절이 국경일로 지정된 이후 공식적인 한국 최초의 국조國祖로 자리 잡았다. 단군 신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민족적 정체성이 어떻게 기획되어 왔으며 어떠한 집단 무의식을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가능해질 수 있다. 최남선(1890-1957)은 단군 신화 해석에 있어 흥미로운 불함문화론을 제시하는데, 불함문화권이 공유하는 ‘밝[Pǎrk, 白]’ 사상의 중심에 단군을 위치시켜 고대 종교였던 단군 신앙의 범주를 동방문화 전반으로 확장시키는 이론이다. “불함은 하늘이라는 뜻”으로, “하늘을 고대 신앙으로 공유”하는 “일본, 만주, 몽고, 유구, 발칸반도에 이르는 거대 문명권”●2) 을 불함문화권이라 불렀다. 


반도에는 예로부터 밝도(Părk道)가 행해져 점차 국가적 색채를 띠게 되었는데 신라에서는 개국 당초부터 '박(朴)'(Pak)이란 제사 계급에 의하여 그것이 전승되고, 그 제사를 밝은(Părkăn) 또한 제사(祭司)를 박수(Paksu)를 주로 하는 거서간(居西干)ᆞ차차웅(次次雄)ᆞ이사금(尼師今)ᆞ마립간(麻立干), 그 교단을 원화(화랑, Părkăne), 그 시대를 불구내(Părknui)라고 칭했다.●3)


최남선이 보았을 때 이 '白'자가 표기한 조선의 고유어는 ‘părk’이고 이를 한글로 적으면 ‘밝'이 된다. 그리고 이 고대의 조선어 ‘Părk=밝’에는 ‘신’과 ‘하늘’이라는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그 신과 하늘 그대로 ‘태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4)


제정일치 사회였던 고대에는 제사장이 곧 부족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밝’이라는 단어의 활용형인데, ‘박수parksu,’ 즉 현대의 남자 무당을 뜻하는 박수의 어원이 ‘밝’이라는 것이다. ‘박수’는 알타이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이 남무男巫를 부르는 명칭과 유사한데, “만주어에서는 faksi, 나나이어에서는 paksi, 어원키어(또는 예벤키어)에서는 baksi, 몽골어에서는 baksi 혹은 balsi, 터키어에서는 baksi, 키르기스어에서는 baksa”로 불린다.5) ‘밝’은 ‘신’과 ‘하늘’을 뜻하므로 불함문화권의  ‘밝’ 사상이란 ‘천 즉 태양신’에 대한 신앙6)이며, 이를 주관한 박수가 단군이라 불렸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의 종교인 무교巫敎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박수가 어떻게 한국의 첫 번째 지도자로 호명되었을까? 나는 단군이 내 민족적 정체성의 뿌리라고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을뿐더러 교과서에 실린 고루한 옛날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믿었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단군 그림은 여성을 유구히 착취해 온 한국의 남성중심적 전통문화에 대한 거의 생리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오히려 소수자를 억압하는 여러 미신에서 탈주하는 법을 알려주는 듯한 백인 유럽 남성 철학자들과 사상적으로 동일시하며 자랐다. 그런데 단군 할아버지가 박수 무당이었다면? 이러한 언명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언어의 중첩과 충돌을 통해 시공간의 이질적인 비틀림, 깨어진 틈을 발생시킨다. 나는 이 틈으로 난 길들을 따라 인종-젠더가 이중으로 식민화된 몸들의 궤적을 따라간다. 


박정진(2010)은 단군 신화를 모계-부족사회에서 부계-가부장 국가로의 역사적 전환 및 태모신에서 천신으로의 이행 과정을 담고 있는 과도기적 이야기라고 본다. 제정일치 시대의 건국 신화로서 “단군은 무교(Shamanism)와 더불어 진행”되는데, 이는 당시에는 무당이 곧 통치자였고 단군은 일종의 “나라무당,” 즉 “우리 민족에게서 처음으로 탄생한 큰무당”7)이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단군은 무당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로, 현재 전라도 방언에서 무당을 뜻하는 ‘당골’이라는 말과 같은 어원8)을 공유하며 단군왕검은 현대어로 하면 ‘당골임금’9)이다. 무교는 “그 이전의 정령숭배나 토테미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늘과 땅의 중재자로 사람을 설정하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배태”10)하는데, 이때 하늘은 남성-천신, 땅은 여성-태모신을 상징한다. 원래 천신 역시 세계사적으로 대개 여신이었으나 후대 부계사회의 도래와 함께 남신으로 대체된 것11)으로 본다. 모계사회는 기본적으로 출계의식이 약한데, “여성이 직접 생산을 하기 때문에 자식이 누구의(나의) 것인지 확인할 이유”가 없고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확립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자궁은 마치 대지가 열려 있듯이 “본질적으로 열려 있는 것”이며, 여성은 “스스로 가진 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베푸는 자(혹은 희생하는 자)”12)이다. 이 열려 있음을 제도적 억압과 감시로 닫은 것이 남성 권력이다. 남성은 스스로 창조할 수 없으며 자신이 살던 땅을 버리고 남의 땅을 정복한 이주민으로서 땅을 주장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하늘, 즉 어떤 땅(여자)에도 소속되지 않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천신이라 주장13)하는 것이다. 따라서 천신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땅에 내려와 웅녀와 결합하여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단군이라는 무당을 낳고 국가를 건설하는 이야기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전환 및 “토테미즘에서 샤머니즘, 샤머니즘의 부족국가에서 고등종교의 고대국가로의 발전 과정”14)을 담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과도기적 이야기로서 여전히 모계사회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단군 신화는 ‘여성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한국인의 강력한 의식적·역사적 기원으로 숭상받거나 고등 종교로 발전하지 못하고 미신으로 취급15)받기까지 하는데, 이는 단군 ‘할아버지’라는 격하된 호칭에서도 드러난다. 이와 같은 모든 정황을 고려했을 때 후대 가부장 권력에 의해 재구성된 지금의 단군 신화 이전의 단군은 실제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존재하며, 여러 학자에 의해 흥미로운 ‘단군 할머니론’16)이 주장되기도 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무당으로서의 단군에 대한 논의는 한국의 사상적 기원의 자리에 무巫를 위치시킨다. 무巫는 “화석화된 고대 종교”가 아니라 “오래된 전통이면서 현재도 지속되는 민속 종교”로, “오늘날 굿을 할 때 세우는 신간이나 솟대, 당산나무의 원형적인 모습을 단군신화의 신단수에서 확인”17)할 수 있듯 이미 고조선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나 현대에는 크게 쇠퇴하여 무교巫敎가 아닌 무속巫俗이라는 명칭으로 격하되었다. 무속이란 말은 무巫를 정식 종교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풍속 속俗’ 자를 쓴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심성이 담긴 신교, 즉 무巫를 원시적이고 속된 것이라는 뜻으로 폄하”18)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그 이전 삼국시대부터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도입되며 무교와 경합을 벌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성리학이라는 지배적인 국가 이념하에 무교가 노골적으로 탄압받았다.19) 무교는 기독교와도 경합을 벌였는데,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가 제주에 부임”했을 때 “당堂 오백과 절卍 오백을 파괴”20)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며, 김동리의 <무녀도>(1936)에 이러한 무교와 기독교의 충돌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후 일제 식민기를 거치며 무교는 “미신으로 규정되어 탄압”받고, “해방 이후 서구 사회를 모델로 한 급격한 근대화가 진행되고 서구식 합리주의가 사회에 만연”21)하며 더욱 세력이 약화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어 1970년대 새마을 운동 기간에 본격화된 미신 타파 운동”22)의 여파로 무교는 크게 쇠락하게 되었다. 무교는 근대 국민 국가로 나아가는 남성 중심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일방향의 역사 속에서 고등 종교로 편입되는 데 실패한 채 이중의 식민화를 겪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는 선악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대의를 논하기 어려운 고대 기복신앙의 때때로 억압적인 믿음으로부터 개인의 자주성과 공동체의 보편 윤리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불교와 도교, 유교, 기독교 등의 고등 종교와 토착 신앙인 무교는 상호 습합되는 과정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존을 도모해 왔다. 단군을 한국의 신화적 뿌리로 설정하되 무巫의 이름을 삭제하고 공론장 바깥으로 몰아낸 역사 기획은 따라서 문제적이며, 오늘날 공동체적 철학과 윤리의 복원을 위해 무巫를 어떻게 다시 호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나는 무巫로 돌아가는 다른 길들, 무(巫)를 다시 불러내는 새로운 문들을 상상한다. 단군 할아버지로 번역된 단군 할머니를 다시 불러내는 변증법적인 반역反譯의 과정, 동시에 명징한 선후관계를 확증할 수 없는 역사 이전 혹은 이후의 암흑을 지금 이곳에 외삽하는 법. 나는 새로운 액자 새로운 옷 새로운 몸 들의 마찰과 폭발을 끝까지 바라본다. 



차학경의 DICTEE를 읽고 나의 몸과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영적인 체험을 했던 겨울 이후 나는 차학경에게 보내는 기도문을 적은 시와 논문과 실험영화를 만들고 차학경에게 바치는 굿판을 기획하고 있었다. DICTEE를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 읽으며 나는 나의 몸을 통과하는 죽음을 만났고 일종의 소명을 받았다고 여겼다. 오직 이 글을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그토록 헤매왔다는 믿기지 않는 믿음, 내 삶의 궤도를 완전히 전환하는 신명神命의 경험 이후 모든 일은 우연처럼 맞물려 흘러갔고 그해 여름에는 제주도에 머물게 되었다. 내 뒤에 강간을 당해 죽은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울고 있다고, 이 여자의 한을 내가 풀어주어야 한다는 무당의 말을 들은 뒤였다. 다른 무당은 아프고 고통받은 영혼들이 나밖에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나에게 온다고 했다. 나는 인간을 넘어 더 넓은 비인간 존재들과 공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을 풀어주며 살아야 한다 했다. 한을 풀어준다는 것, 한을 씻기고 정화하고 승화시킨다는 것이 무엇일까? 밤마다 나의 몸과 정신을 순식간에 침투해 장악하려는 온갖 어둡고 음습한 기운과 맞서 씨름하며 한숨도 잠들지 못하는 여름을 보내는 중이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가 상상하는 그 무엇이든 눈앞에 실제 존재하는 형상으로 나타날 것 같은 공포가 나를 압도했고 나는 상징계 내부의 현실에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나를 집어삼키려는 나의 무의식과 싸워야 했다. 나의 경계라는 것이 완전히 무너져 온 우주를 향해 취약하게 열려 있는 거대한 구멍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스치는 한 줄기의 바람에도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아프고 낮은 것들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어떻게 내가 집어삼켜지지 않을 수 있지? 어떻게 내가 죽지 않을 수 있지? 혹은 살아 돌아올 수 있지? 그건 내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나 그 신은 내가 아는 절대적인 유일신의 형상은 아니어야 했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신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신이 무엇인지, 영매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제주 강정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곳이 나의 집임을 알았다. 한국도 이국도 아닌 섬나라, 서기 1105년 고려에 복속되기 전까지 천 년의 독자적인 역사를 지닌 탐라국의 땅. 본래 한반도, 중국, 일본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가 약 1만 년 전 바다의 수면이 높아지며 섬으로 분리된, 태초부터 한국 내부에 들어와 있는 타자이자 외부의 순수한 기원으로 보존되어 있는. 한중일 해상 교류의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수많은 이방인과 여행자들이 드나들었던 경계 지대. 육지 사람들의 도피처이자 유배지, 학살지, 관광 자본과 군사 기지로 파괴되는 현재 진행 중인 한국 내부의 식민지. 그럼에도 아직 생생히 살아남아 있는, 놀랍도록 힘이 센 땅과 물과 하늘과 바람의 숨결. 모든 존재에 신령이 깃든 신들의 땅. 이 땅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싸우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린아이로 돌아가 세계라는 것, 그 속에 존재한다는 것,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배웠다. 그것은 내 몸의 감각을 재설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거친 파도 속에서 상처를 얻고 돌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햇빛과 바람과 풀과 이끼 돌과 바다 생물들의 우주를 보았다. 나는 실내에 들어온 벌레를 죽이지 않고 부드럽게 내보내는 법을 터득했다. 식물들이 뿜어내는 향기와 열기를 마셨다. 식탁 위에 놓인 빨갛게 죽은 새우의 눈과 전복의 신비로운 껍질을 보며 후두를 찌르는 통증을 느꼈다. 제주에 사는 친구들에게 들은 구전口傳 지식을 따라 숲속의 본향당과 신목神木과 굿판을 찾아다녔고 나무와 돌 정령에게 기도하는 법, 바다와 바람과 천둥이 건네는 말을 듣는 법을 익혔다. 모든 순간 모든 존재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매 순간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매 순간 내가 반복하는 죽임들, 죄 많은 나의 몸을 용서해 달라고 하늘과 땅을 향해 뻗은 나무 앞에서 울었다. 신이란 가장 고통받은 존재를 이르는 말이니 기도란 단지 아파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돌의 한 모래의 한 물의 한 벌레의 게의 나무의 한 개와 말과 꽃의 한 건물과 카메라와 가로등의 한 만물이 품은 한 들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 생성과 소멸의 무한한 만다라를 이루었다. 나의 몸은 한의 혈이 새겨진 대지가 되어 한의 은하가 짜인 하늘을 입었다. 나의 몸은 하나가 아니고 옷도 하나가 아니었으나 쉼 없는 파도에 알알이 부서지는 모래알처럼 달무리의 그늘이 빚어낸 우물처럼 하나였다. 나는 아주 먼 곳에서 눈앞까지 도달한 오랜 미래를 보았고 

그것은 벌린 입의 텅 빈 시간이었다.



 

하나가 시작 없음에서 시작한다


다른 문을 낸다


북소리를 따라가 그게 너의 이정표이니


고동치는 우주의 심장으로부터 비밀스럽게 넘쳐흐르는 


빛과 어둠의 춤


멀어지며 가까워진다


세 명의 동방박사가 잠든 모흥혈 세 개의 구멍 속으로


원시적 미래로


먼 길 떠난 할머니를 부른다


꼬리가 꼬리를 무는 뱀의 입속


목구멍의 천도길 따라 


복성複聲을 이루는 나선의 선율


달아난 과거와 미래의


구부러지는 시공 속


모든 사물이 눈을 뜨고 나를 마주 본다 


천 개의 나무 이파리마다 울리는


천 개의 방울 소리


무녀의 흩날리는 흰 소매가 


하늘과 땅 사이 


한 쌍의 봉우리를 이루고


높은 것은 일월이요 얕은 것은 서낭이로니


하늘의 파도에 마를 불려 


신의 옷을 씻세


눈이 멀도록 휘도는 오색의 쾌자 자락


나를 부르는


단군 할망들의 버선발 소리


할망은 제주어로 신이다 


아이처럼 웃는 선녀 할망들의 옷자락 속


불어나는 둥근 몸들은


구름의 무덤 속에서 또 다른 알을 품으니


제석 할망은 하날님 벗고


용신 할망은 바당님 벗고


간장이 풀리는 대로 놀고 갑서


허물어지는 천지간 소용돌이 속으로


신이 들고 신이 나고


천지할망 마고할망 단군할망 산신할망 바리할망 영등할망 애기할망 박수할망 학경할망의 한이 


끝 없음에서 끝나는 하나가 되어 


돌들의 산과 폭포를 이루네 


귀향하는 새들은 바람의 옷깃 따라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잊혀진 믿겨진 단어들의 


이중 피동 접합부들이


영원히 침묵하는 소리


귀신은 죽음의 신이고 신은 삶의 신이니23)


희고 둥근 우주를 먹어라


우주의 구멍을


그 둘레에서 타오르는 불


마중물을

 ●




 

미주

1)  두 단어가 합쳐진 혼성어 2) 양쪽으로 이등분되며 열리는 여행가방.

2) 이난수, 「전통과 저항의 담론으로서 ‘풍류’의 소환 – 최남선·이능화·권상로를 중심으로」, 『陽明學』제62호, 한국양명학회, 2021, 245쪽 참조. 

3)  최남선, 전성곤 옮김, 『불함문화론·살만교차기』, 경인문화사, 2013, 50-51쪽. 4)  김병문, 「최남선의「不咸文化論」을 통해 본 고대사 만들기와 역사비교 언어학의 관계」, 『大東文化硏究』 110, 대동문화연구원, 2020, 335-336쪽. 5)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박수(博數)’

6)  이난수, 앞의 논문, 245쪽 참조.

7)  박정진,『단군신화에 대한 신연구』, 한국학술정보(주), 2010, 34쪽, 47쪽 참조.

8)  “하늘을 뜻하는 알타이어 ‘텡그리(Tengri)’의 음차,” (국사편찬위원회,『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경인문화사, 2011, 145쪽 참조)

9)  최태호,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단군과 단골과 당골」, 

《프레시안》, 2020.04.10., 2024.09.18. 접속, https://www.pressian.com/ 참조.

10)  박정진, 앞의 책, 35쪽 참조. 

11)  위의 책, 37쪽 참조. 

12)  위의 책, 38쪽, 96쪽 참조.

13)  위의 책, 37쪽, 97쪽 참조.

14)  위의 책, 35쪽 참조. 

15)  위의 책, 63쪽, 98쪽 참조. 

16)  조희원, 「단군왕검은 남성이었나, 여성이었나?」,  

《오피니언뉴스》, 2015.07.30., 2024.09.18. 접속,  

17)  국사편찬위원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경인문화사, 2011, 144-145쪽 참조.

18)  조성제, 「무속인은 가고 무교인 오라」,  《한겨레신문》, 2019.10.19., 2024.09.18. 접속, https://www.hani.co.kr/ 참조.

19)  국사편찬위원회, 앞의 책, 146-147쪽 참조. 

20)  변지철, 「제주신화·무속신앙 질곡의 수난사」, 《연합뉴스》, 2021.07.18., 2024.09.18. 접속,  https://www.yna.co.kr/view/ 참조.

21)  국사편찬위원회, 앞의 책, 150쪽 참조. 

22)  디지털제주문화대전 ‘미신 타파 운동’ 

23)  박정진, 앞의 책, 10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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